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늘은 절기상으로 경칩이다. 하지만 막바지 추위가 봄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기 싫어서인지 아침 저녁으로 한껏 기승을 부린다. 24절기의 셋째 절기인 경칩은 일어난다는 '경(驚)' 자와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 자가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갇혔던 것, 맺혔던 것이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게다. 정말 우리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웃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봄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진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이 새순을 낼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때를 분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해 허둥거리기에 바쁜 것 같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자기 실존을 문제 삼는 존재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고단한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모든 동물들이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지만, '왜?'라는 질문은 오직 인간만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때 삶은 튼실해지게 마련이다. 사실 열심히 바쁘게 산다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이다. 그러나 그 바쁘다는 삶의 방향이 자아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되시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다면 한낱 바람을 잡으려는 것일 게다. 그런 삶은 언제든 위태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은 계절이 가져다주는 은총의 열매를 보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이라면 갇혔던 것, 맺혔던 것이 훨씬 더 많이 풀릴 것이다. 여기엔 이유 없이 달리는 삶의 방향에 새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는 하늘의 선물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갑작스런 날씨의 변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처럼, 머지않은 그 날에 아름답고 영롱한 자태를 선사하는 상록수들이나 누런 풀잎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성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를 말없이 외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것들은 계절의 순환 속에서 자기 삶을 그토록 잘 파악했다고 보면 틀림없을 게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는 더 이상 우쭐거릴 것도 없고, 가진 게 없다고 주눅 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겨울이 비켜나고 있는 이즈음 길을 잃고 사는 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마땅히 마음 둘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마땅히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지, 그 길을 걷고 있는지…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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