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발상
인생사 과욕은 금물인가 보다. 교회 안 텃밭에다 힘들여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비닐까지 덮어 씌웠다. 거기에다 작은 구멍을 내고는 봄 채소 모종을 심었다. 상추, 쑥갓, 오이고추, 청양고추 등. 보기 좋게 심겨진 채소 모종 위에다 물도 듬뿍 뿌려주고서야 모든 작업을 마쳤다. 푸짐한 결실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잘 자라기를 아기 돌보듯 했다.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텃밭에 이식한 모종이 며칠이 지나지 않아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바짝 말라버렸다. 보란 듯이 호기롭게 시작한 봄농사(?)가 실패로 끝나는 순간이다. 알고 보니 모종을 이식하기 전 이랑에다 뿌렸던 요소비료가 과했던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얄팍한 생각이 떠올랐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새 모종을 구해다가 심기로 결정했다. 참 유치한 발상이다.
이 같은 유치한 발상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답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는다. 다만 이 유치함이 여러 장르의 음악 가운데 유난히 동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오빠생각' '과꽃'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어린이날 노래’ 등등의 동요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가녀린 손으로 연주하던 풍금에 맞춰 불렀던 노래들이 어제같이 생생하다.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흥얼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많은 노래 중 짧은 노래 하나가 최근 가슴에 와 닿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다. 곡조가 단순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벼락같이 깨친 게 있다. 토끼가 맑은 물을 더럽히기 저어해 그냥 물만 먹고 간다는 구절 때문이다. 그렇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이라고 했던가. 성경에도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세상을 살아가며 이를 일찍 깨칠수록 좋다. 그렇다면 나는 동요 속 산토끼보다 못한 사람일까. 지금 교회 안 텃밭에는 두 번째 채소 모종이 심겨져 있다.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