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기
확연한 봄기운을 느껴 보려고 우리 교회 지척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걸어보았다. 겨우내 추위로 움츠렸던 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자전거로 신나게 질주하는 이들, 삼삼오오 거닐면서 대화하는 이들, 애견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뜀박질하는 이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싹을 틔울 나무들의 향연이 시야 가득 들어차고, 이름 모를 새들은 파란 하늘 위로 생명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세상이 새봄으로 활기가 가득 차 보였다. 이처럼 계절이 순환하듯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순환한다.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무리수를 둬가며 안간힘을 쓴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보며 씁쓸해 한다. ‘세상사 쓸쓸하더라’. 왜 아닐까? 하지만 쓸쓸하더라도 살아야 하고, 답이 없어 보여도 살아야 한다. 그게 인생이니까.
물론 잘못된 세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해도 안 되고, 냉소적이어도 안 된다. 거짓에 대한 침묵이야말로 거짓이 자라는 온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만 하면 안 된다. 따라서 바로 오늘,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시작해 보려는 용기를 내어 보면 어떨까. 투덜거리는 것보다는 그런 일을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시편은 세상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가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시37:1)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의 시간관념과 우리 시간관념이 다르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악한 자들이 풀처럼 시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인은 그렇기에 노여움과 격분과 불평을 삼가라고 말하고 있다. 자칫 우리가 그렇게 하기라도 한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악으로 잡아 이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인 줄은 알겠는데, 마음을 그렇게 다스리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그 말씀을 명심해 보면 어떨까. 마음 씀도 결국 버릇이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버릇이고, 낙심하는 것도 버릇이다. 그런가 하면 화를 잘 참는 것도 버릇이고, 마음을 희망 쪽으로 데려가는 것도 버릇이다. 전자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바라다보면, 이래저래 나는 연약한 존재인가 보다.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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