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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단상(3)
운영자 2021-01-31 추천 1 댓글 0 조회 517

겨울단상(3)


  지난 밤, 휘영청 밝은 달이 떴었는데 이른 새벽녘에 기습적인 눈이 내렸다. 이제 그만 내려도 좋으련만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으로 조금 고달프다. 한때는 ‘구라청’이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일기예보가 잘 들어맞지 않았는데, 하도 욕을 먹어서일까 요즘은 그럭저럭 잘 맞는 게 신기방통하다. 새벽녘에 내린 눈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 날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대로 이른 새벽부터 때맞춰 눈이 내렸다. 새벽기도회가 끝나고서 교회카페 창문을 통해 사선으로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카페 앞 테라스도, 더 넓은 교회마당도, 앞산도 뒷산도 온통 눈 세상으로 변했다. 하얗고 소복하게 내려 앉았다. 한참이나 구경했다. 금세 몸은 추위에 살 얼었다. 눈 녹듯 녹이고 싶어졌다. 얼른 교회 본당으로 달려가 열풍기를 켰다. 온기가 있으니 살만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 밖으로 다시 나갔다. 내린 눈 때문이다.


  보는 눈이야 낭만이라고 하겠지만, 내린 눈이야 골칫덩어리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잠에서 깬 이웃 주민들이 출근하거나 운동하기 위해 교회 앞을 지나갈 텐데 안전 보행을 위해서는 교회주변 제설작업이 필수다. 혹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눈 치우는 도구인 눈삽(넉가래)을 들고 분주히 교회마당을 오갔다.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치워보지만, 쌓이고 내리는 눈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낙심천만이다. 애써 치워놓으면 다시 내린 눈으로 교회마당이며 교회 앞이며 하얀 눈밭으로 다시 제자리다. 이래서는안 되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치워야 할 것, 눈이 다내린 다음에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대충 지나다니는 길만 치우고는 언 손을 팔짱에다 끼운 채 다시 본당으로 갔다. 이미 켜 논 열풍기의 온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한 겨울에 누리는 호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리던 눈은 이미 그쳤고, 아니나 다를까 이웃 주민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마당이야 평일이니 드나드는 사람이 없기에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교회 앞이다. 서둘러 넉가래를 들고 뛰쳐나갔다. 이미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눈을 치웠더라면 여기 지나간 이들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이미 지나간 걸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냥 열심히 넉가래를 밀고서 제설 작업을 했다. 누군가는 눈 치워진 길을 편안하게 지나갈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미 불편한 길을 갔다면 돌아오는 길은 편안히 지나갈 것이 분명하다. 눈 치우기를 마칠 쯤, 익히 알던 이들이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수고한다는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 왔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추운 날이 지만, 유난히 따뜻한 순간이었다.​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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