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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운영자 2019-11-10 추천 2 댓글 0 조회 842

​변함없이


  입동(立冬)이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 이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며,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 입동날 추우면 그 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 겨울 삭풍의 예방주사를 맞은 날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는 모든 사물을 마비시키듯 그렇게 따끔 하게 찾아왔다. 지인들이 하나같이 외친다. “감기 조심 하세요.” 조심하지 않아서인지 감기가 슬며시 3종 세트로 찾아왔다. 편도염, 잦은 기침, 거기다 주체할수 없는 콧물은 괜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피곤한 몸을 이끈 채, 찬 새벽바람을 맞으며 내려선 성전 앞에는 살얼음 꽃이 피었다. 하루의 첫 순간을 시작하며 수줍은 어린 아이마냥 살며시 열어 재낀 성전 문 사이로 차디찬 찬바람이 엄습해 온다. 요 며칠 사이에 이렇게 온도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넋두리를 해본다. 추위 한 번 찾아왔을 뿐인데, 일순간 모든 것이 싹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어쩌면 항상 그대로 있을 것 같았던 것들이 변한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든다.

 

  늦가을 정취를 맘껏 뽐냈던 성전 앞 정문 곁 국화들이 갑작스런 추위에 생명을 다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처음에는 성전 안 강단에서 호기롭게 자신의 외모와 향기를 뽐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전 입구에 자신의 자리를 틀었다. 나중에는 성전 앞 정문 곁에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일순 더이상 꽃과 향기를 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한 다는 게 못내 서운하다. 10년, 20년이나 되는 사람들 간의 교류라면 그것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 게다. 나에게도 10년, 혹은 20년 넘게 사귀는 친구 같은 이들이 있기에. 그런 그 친구들과의 우정과 인연보다는 턱도 없이 짧지만, 나는 사람 으로 너는 꽃으로 우리가 만나서 보낸 시간이 한 달 남짓이기에 떠나 보내기가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온 교우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늘 국화의 단아함과 향긋한 꽃내음을 좋아했기에.


  마지막 꽃잎을 떨군 채, 그래도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국화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주변을 돌아다보면,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늘 빛깔이 그러하며, 산등성이 곱게 물든 단풍이 그러하며, 차디찬 새벽 공기가 그러하며,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러하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근본이다.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내려 한 국화처럼 말이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차디찬 삭풍이 이는 겨울이 오고서야 겨울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다. 이런 어리석음은 세월을 낭비하게 한다. 징조가 보이면 바로 징조 이후의 상황을 바로 느끼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누군들 시련이 없을까 보냐.
내가 느끼는 시린 바람을 통해서도 근본이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시련을 겪고 있을 뿐이기에.​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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