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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무지게
운영자 2017-05-05 추천 18 댓글 0 조회 773

​아버지와 나무지게


  완연한 봄이다. 교회 앞 노상에는 철쭉꽃이 만개했다. 곡우(穀雨) 절기를 지나면서 교회 안 텃밭을 일굴 요량으로 인근 동네로 나가보았다. 경운기라도 빌릴 수 있다면 도움을 받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난 겨울에 눈여겨 보아두었던 경운기가 어느 집에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중 집 찾을 표식이라도 해 둘 것을. 그렇게 애타는 심정으로 한참을 돌아다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물건을 보았다. 마주하고 있던 집 담장 너머에 세워진 나무지게다. 무척이나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지게는 이제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듯싶은 데 그걸 여기서 보게 되다니.


  나무지게는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우리 집은 한 겨우내 농막 안에다 나무지게를 보관했다. 정작 본격적인 쓰임새는 이맘때 농사철을 시작하면서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농막 안에 보관했던 나무지게를 꺼내다가는 이곳 저곳 손을 보셨다. 그리고는 빈 지게를 냅다 들쳐 업고 들뜬 마음으로 한 해 동안 농사지을 전답(田畓)을 오가곤 하셨다. 정 지게에 담을 것이 없으면 함께 간 자식이라도 태워주곤 하셨다. 해 본 사람은 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그 일이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지를. 예나 지금이나 농심(農心)은 같을 게다. 덩달아 아이도 신이 났다.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 높이 종다리는 한껏 목소리를 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다.


  기억은 꼬리를 문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버지의 나무지게가 떠오른다. 아이의 눈에 그 아버지의 나무지게가 보이면, 어김없이 들판으로 내달렸다. 물오른 능수버들 곁가지를 꺾어다가 버들피리를 만들어 부시던 사랑의 온기를 느끼며 어린 생명은 그 너른 들판에서 잠이 들었다. 삶으로 일깨운 아버지의 사랑은 곧 아이의 골수에 지혜로 천착(穿鑿)한다. 잠언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잠 23:15).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지혜를 배우던 아이는 이제 중년이다. 담장 너머 나무지게에 천진난만한 얼굴의 어린 내가 얹혀있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진다. 완연한 봄이다.​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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