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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
운영자 2020-07-05 추천 1 댓글 0 조회 724

내리막길

 

​  우연히 쳐다본 목양실 창밖에 고추잠자리 떼가 군무를 펼치고 있다. 순간 가을이 왔나 착각할 정도로 고추잠자리 천지다. 들뜬 마음에 호응이라도 하듯 자리를 박차고 교회 바깥으로 나갔다. 다들 힘든 코로나 시국이 라고 하지만 7월이 시작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야외로 차를 몰고 나간다. 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전용도로며, 일반국도도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행렬로 가득하다. 물론 매년 이맘때면 이런 정체현상을 교회서 보기가 다반사다. 하지만 올 해를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웃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기를 오후 3시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회 앞 도로는 한산해진다. 시간은 더 흘러 무더위를 식힐 밤을 기대해 보지만, 여름 낮은 어찌 그리 긴지. 아침에는 해가 일찍 뜨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밝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수요예배를 드릴 시간이면 깜깜한 밤이었는데, 5월 중순부터는 여전히 서쪽 하늘에 햇빛이 남아 있다.


  나이 차이는 한참 나는데 친하게 지내는 후배 목사가 근처에 살고 있다. 자주 찾아오거나 아니면 자주 찾아 가기도 한다. 그날도 그렇게 찾았다가 한참이나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 세상 사는 모습이 성도나 목회자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목회자니까 조금 더 성별된 삶의 여유를 가진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다. 때론 좋은 일로, 때론 힘든 일로 일희일비 (一喜一悲)하며 산다는 점에서 말이다. 차로 돌아오는 길, 잠시 언덕길로 올랐다가 긴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차창으로 비치는 하얗고, 노랗고, 빨갛 기도 한 저녁 노을빛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해 질 무렵의 서쪽 하늘이 모든 감각을 압도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처음 보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그 빛에 눈이 멀다시피 한 채로 취해 있으면 누군가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이제 연말까지 쭉 내리막길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夏至)를지났으니 이제부터 동지(冬至)가 든 연말까지 점점 낮이 짧아진다는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다.


  매번 똑같은 말이라 새로울 게 없다 못해 대사를 외워서 반복하는 연극 같다.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웃는다. 웃고 나면 시무룩해진다. 작년 여름, 3년 전 여름, 5년 전 여름을 생각한다. 언뜻 보면 달라진 게 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했던 이들이 곁에서 보이질 않는다. 떠난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남겨진 빈자리가 흘러가는 시간만큼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내리막길로 이어진 아쉬 움이 남는 인생이라면 더욱 신앙의 힘이 필요하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하나님의 계획보다 클 수 없고, 하나님의 섭리보다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절망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한 걸음씩 내어 디뎌보자. 내리막길이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게다. 언젠가 다다를 오르막길을 보기에.​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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