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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온다
운영자 2019-11-17 추천 2 댓글 0 조회 713

​겨울이 온다

 

  입동(立冬)이다. 조석으로 마주하는 추위로 몸이 절로 움츠려든다. 가평으로 심방 가는 길. 회색빛 도회지를 뒤로하고 노랑, 주홍으로 번진 끝물 단풍들의 향연이 펼쳐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계절의 시계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하루 사이에 뒤바뀌는 요즘이다. 한낮의 따스한 늦가을 볕이 차창을 헤집고 들어오고, 곱게 물든 단풍이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손짓하며 반겨 맞는 듯하다. 미음완보(微吟緩 步)하듯 정속주행을 하는 앞선 자동차를 따라 속도를 줄이며 차창을 내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겨울바람을 한껏 담는다. 화려한 단풍으로 물든 산야에 비해, 그다지 넓지 않은 논과 밭에는 모든 것이 떠나버린 폐교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다. 지난 여름내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품어 안은 낟알들이 여물게 익어 탐스러운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그 장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디 그 뿐이랴. 손길 바쁘던 농부들의 모습도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루는 어느 랍비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오는 때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한제자가 대답했다. “저 멀리에 있는 것이 나무인지, 동물인지, 사람인지를 구분할수 있으면 아침이 오는 때입니다.” 그러나 랍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제자가 답변을 이었다.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알 수 있고, 꽃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사물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날 때, 아침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도 랍비는 손을 내저었다. 뒤이어 여러 제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지만 랍비는 아니라고 했다. 결국 제자들이 랍비의 의견을 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든, 그 사람이 나의 형제며 내 누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 새로운 아침이 오는 것이다.”라고.

 

  누구에게나 어두운 밤, 추위와 싸워야 하는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때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작은 불빛 하나가 필요하다. 밝혀 놓은 작은 불빛 덕에 누군가는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두운 것은 어쩌면 우리가 마땅히 밝혀야 할 불을 켜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이 시대는 싸워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무한경쟁을 부추기지만,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그것과는 다르게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몸으로, 삶으로 그것을 증명하 도록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느라 조바심내지 않고, 무너질까 불안 해하지 않고, 매일 아등바등하지 않는 삶을 통해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면 새로운 아침을 맞는 이가 되지 않을까. 코끝이 시릴 만큼 완연한 겨울 초입이다. 추수를 통한 감사의 계절에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자. 붙잡고 싶은 시간, 모두에게 추수의 기쁨이 넘쳤으면 한다. 가을이 간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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