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 하늘문교회 >
  • 목회자칼럼
수박에 얽힌 진실
운영자 2018-09-09 추천 7 댓글 0 조회 773

수박에 얽힌 진실


  조석(朝夕)으로 선선해졌다. 여전히 한낮이면 태양 볕이 따갑지만, 어느 듯 가을 문턱에 다다른 건 틀림없다. 이제 덥다는 날씨 탓하기에 민망해 이곳 저곳 분주히 손을 내밀어 보았다. 지난 봄, 텃밭에 심었던 아로니아 나무가 여름 폭염에 노랗게 변해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너무 무심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심어 놓으면 모든 게 잘 자랄 것이라는 변명과 무지의 소산이다. 텃밭을 나와 교회마당 언저리에 둘러 퍼져 있는 풀뿌리를 뽑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저도 생명인데,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생명 다하는 날이 올 것이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몰려들어 남의 피를 좋아하는 모기의 극성에 황급히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지난 여름, 풀과 모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했을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의 노고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예전 개집 앞을 지나치는데 놀라운 생명의 열매를 보았다. 나를 닮은 듯, 길쭉하게 잘 자란 수박이었다. 그곳에다 수박 밭을 만든 것도 아닌데, 아니 어떻게 그곳에 수박넝쿨이 저렇게도 잘 자랐는지. 그렇다고 수박씨를 일부러 뿌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만히 옛 일을 더듬어 보았다. 먹다 남은 수박을 하도 하늘이(교회서 키우는 진돗개 이름)가 달래서 한 조각 준 적이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도 그때 하늘이가 먹고서 뱉은 씨가 땅에 떨어져 발아하면서 저렇듯 넝쿨을 이루고, 한 덩이 큰 수박을 맺었을 것 같다. 아, 물론 하늘이가 먹은 씨가 장을 거쳐 배변을 통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웠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먹음직한 수박을 수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우연찮게 발견한 수박을 마치 보물처럼 여겨 누군가 볼 새라 수박 넝쿨로 잘 덮어 두었다. 물론 혼자 먹을 요량은 아니다. 다만, 주일학교 개구쟁이들이 채 익지도 않은 수박을 따 버릴까 해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다. 죽지 않는 내 자신의 성정(性情)으로 많은 열매를 기대하며 살고 있었기에.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긴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제 돌아오는 주일이면 잘 자라준 수박을 따다가 함께 나누려고 한다. 얼마나 잘 익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렸기에 믿음(?)으로 담대히 쪼개려고 한다. 그리고는 교인들 저마다 한 입씩 베어 문 정겨운 모습을 볼 것이 틀림없다.​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고향 가는 길 운영자 2018.10.15 7 782
다음글 우루사는 행복을 낳습니다 운영자 2018.09.02 8 811

12192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536 (구암리) 하늘문교회 / 담임목사 허영진 TEL : 031-595-1534 지도보기

Copyright © 하늘문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56
  • Total87,753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