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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
운영자 2017-12-31 추천 10 댓글 0 조회 930

내리막길


  한 해의 막바지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잦은 탓에 이젠 눈마저도 반갑지 않다. 겨울 아침 해는 늦게 뜨고 저녁 해는 일찍 진다. 새벽기도회가 마치고 성도 들이 돌아간 뒤에 본당 문을 나서면 그제서야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 온다. 평 소 같으면 환하게 밝은 아침인데, 지금은 한겨울이라 햇빛을 통 볼 수가 없다. 햇빛을 볼 수 없으니 햇볕의 따사로움을 즐긴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출근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나름은 시간을 정해서 목양실로 나오면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줄서 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해 보지만 때론 뒤로 미루는 것들도 지천이다. 그만큼 걱정도 덩달아 쌓인다. 혼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면, 교회 위로 비추고 있던 햇빛이 어느새 저만치 교회 뒷산 쪽으로 기운다. 뭐가 그리 급한지 바삐 줄행랑을 치려고 한다. 헤어짐이 아쉬워 그 끝자락을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온기마저 앗아간 모진 바람 탓에 잠시 당혹스럽다. 


  나이 차이는 한참 나는데 신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후배 목사님이 가까운 곳에 교회를 개척한단다. 상가 3층 건물을 임대하기로 하고 잔금도 치렀다. 지난 주 에는 이사도 했다. 그 곳에 가보니 손 볼 것이며 구입해야 할 집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개척해 보았다고 이런 저런 조언과 함께 필요한 주방기구며 전등이며 테이블 등을 구입하기 위해 함께 헤집고 다녔다. 넉넉하지 못한 재정이라 새 물건을 들여 놓기는 힘들고 해서 주로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곳을 찾았다. 그럭저럭 형편에 따라 구색을 갖추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좀 여유가 된다면 더 좋은 것으로 섬기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마음만 짠 하다. 물건을 구입하고서 나오는 길은 잠시 올라갔다가 길게 내리막이다. 그 길로 차를 몰고 들어서는 순간 하얗고, 노랗고, 빨갛기도 한 햇빛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해 질 무렵의 서쪽 하늘이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것만 같다. 


  그 빛에 눈이 멀다시피 한 채로 잠시 취해 있으니 운전대를 잡은 옆자리 목사님이 말한다. “중고지만 이렇게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네요.” 힘든 환경을 넘어서는 신앙인의 말은 이렇게 하는 거다. 매번 듣는 똑같은 말이라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빙그레 웃어주며 맞장구를 쳐보지만 이내 시무 룩해진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있어 잠깐 눈을 감았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 럼 스쳐 지나간다. 개척 후 지난 삼년이 어느 순간 지나갔다. 사람도 재정도 없었기에 기도만이 살 길이었다. 그때마다 삶의 기적이 일어났다. 때를 따라 돕는 이들을 보내주셨고, 때를 따라 필요한 재정도 채워주셨다. 불평이 감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을 담은 감사가 먼저였다. 그 힘든 내리막길에도 지금까지 함께 해준 성도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 곳에도 환한 햇빛이 우리를 비추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흘러가는 것 을 지켜본다.  

 

-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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