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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가는 길
운영자 2017-08-08 추천 9 댓글 0 조회 1022

​속초 가는 길


  20여 년 전 신학생 때의 일이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속초에 갈 일이 생겼다. 함께 떠나는 일행들은 굳이 승합차를 몰고서 가겠단다. 운전은 내 몫이다. 평소에도 운전을 즐겨한다고 떠벌리고 다녔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여름 오전 10시 잠실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높은 산을 넘고 또 넘었다. 무려 4시간 30분이나 걸려 속초를 밟았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속초까지 90분이면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생긴 마당에 그 때의 속초 가는 길은 정말 까마득한 옛날얘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동해 푸른 바다를 보리라 마음먹으면 차에 올라 세계에서 11번째로 긴 터널을 통과하고, 하늘 높이 치솟은 고가도로를 횡단하여 동해안까지 전력 질주할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속초 가는 길에 올랐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들뜬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편하고 번거로우며 몸이 수고로운 과거를 좋다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여행을 떠난답시고 집을 나와서는 어서 달려보라고 잘 닦아놓은 길에 올라 정해놓은 목적지만을 향해 일사천리로 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달리고 있는가? 잿빛 도로와 굉음에 노란 불빛이 한데 얽혀 있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터널과 높이 가로막은 방음벽과 속도제한 표지판만을 보면서 왜 달리는가? 달리면서도 내내 이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인생은 길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어린왕자>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생 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아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다. 그것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돌멩이 하나를 놓으면서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나와 무관해 보이는 세상의 비참함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걸었던 인생의 길이다. 이제 속초 가는 고속도로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던 막국수 집도, 지름길일 거라 싶어 들어섰다가 마주친 시골 동네의 구멍가게도, 밭에서 막 따와서 양은솥에 푹푹 삶아낸 옥수수도, 그리고 사람이 없다. 그저 그곳에는 같은 곳을 향해 경쟁하듯 달려 나가는 조바심 난 차들만 있을 뿐이다.​

 

                                                          ​구암동산 하늘문지기 허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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